책의 퀄리티에 비해 크게 유행세를 타지 못한 안타까운 책. 세상은 너무 넓고 책들도 쏟아져 나오기에 이런 숨겨진 명작이 크게 각광을 받지 못하고 사라져간다는 점은 받아들여야 하지만 한편으로 아련한 마음이 드는건 어쩔 수 없나보다. 책의 내용에 대해 들어가기 전에 먼저 이야기를 하자면 소설을 쓰려면 정말 왠만한 전문서적이나 연구논문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조사와 공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처음 느끼게 한 책이다. 이 책과 시대적으로 이어지는 태백산맥에서도 그러했지만, 이 작가가 7권의 책을 만들어내는데 11년을 훌쩍 넘긴 시간이 걸린데에서, 특히 소설을 준비하는데 그 시간의 반 이상을 썼다는 점에서 역사적 사실과 인과관계를 소설로 풀어내기 위해 연구하고 공부했을지 그 방대한 양에 존경을 표하는 바이다. 그렇기에 그 노력의 양만큼 인정받지 못한점이 더욱 아쉽다.
시대적 배경은 일제강점기 말기에서부터 해방 후의 정치적 혼란 - 이때가 주요 무대이고, 한국전쟁 이전까지를 배경으로 한다. 여운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어나가는데, 역사적 사건을 펼쳐나가는 이 소설가의 호흡은 놀랍다. 앉은 자리에서 한권을 훌쩍 다 읽어버리는데에 전혀 지루함이 없을정도로 흥미진진하고, 대부분의 사건들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점에서 더 인상깊다. 나는 자라온 배경상 보수성향을 가지고 있는데, 이 책도 그렇고, 태백산맥도 그렇고 읽어본다면 작가 개인들의 정치적 성향을 배제하더라도, 과거 시대의 사건들에 비추어 보아 왜 사람들이 이승만을 욕하고 미국을 싫어했었는지 이해가 가는 대목들이 많다. 물론 여전히 미국없이는 독립도 없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그 시대를 살지 않았기에 나는 이리 쉬이 말할 수 있는것인지라.
크게 네명의 필두와 그 밑의 인물들의 치열한 정치싸움과 살길을 찾아나가는 과정들이 더할나위없이 흥미진진한데, 해방 후 지도자격의 네명은 이렇다. 소련을 받아들이고 조선을 공산화 하는 것만이 살길이다 - 극도좌파의 남조선노동당 이정 박헌영. 조선인민들이 다같이 잘 먹고 사는 공산화는 옳으나 우파 및 친일파와도 적절히 손을 잡으며 나라를 위해 힘써야 한다 - 중도좌파의 건국준비위원회 몽양 여운형, 우냐 좌냐가 중요한 것이 아닌 우리 민족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 - 민족주의의 백범 김구. (소설에서 묘사된 바로는) 미국과 손을 잡고 신탁통치를 하며 행정적 능력이 뛰어난 친일파들 또한 중용해야한다. 민주주의 만이 답이다 - 극도우파의 한국민주당 우남 이승만.
역사는 이승만의 승리로 끝났지만 김구나 여운형이 역사의 승자로 남았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까 상상케 하곤 한다. 특히나 이 소설에서 묘사되는 이들의 인품으로 본다면 더더욱. 결과적으로 박헌영은 너무 극단적이었고, 여운형과 김구는 인자했고 나라를 생각했으나 정치를 할 줄 몰랐다. 음해와 방해공작등에 너무 관대했고 무지했다. 7권에 달하는 내용을 다 설명할 수는 없으니 책의 내용과 관련 없이, 여운형이 자신의 부하 홍사공에게 알려준 한국말 1~10의 어원의 설명이 인상깊었기에 이를 공유하며 리뷰를 마친다.
하나. 한울, 하늘을 뜻한다. 一天.
둘. 들, 대지를 뜻한다. 二地
셋. 씨앗. 三種
넷. 나엇, 나를 뜻한다. 四生. 하늘과 땅이 있고, 씨앗을 심으니 생명이 태어난다.
다섯. 다사리, 다스리다. 五治理. 생명이 태어나고 만인과 국가를 다스린다.
여섯. 이어서라는 뜻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지속을 뜻한다. 六持續. 나라가 잘 지속된다.
일곱. 일이 곱하다. 곱되다. 성취되다. 結塊. 일이 결괴되어 이루어진다.
여덟. 열고 닫다. 여닫다. 마음대로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다. 주역상으로 開閉變通이라 한다.
아홉. 아우르다. 아울흠. 종합하다.
열. 열다. 일이 이루어지고 마음을 열고 닫을수 있으며 모든것을 아우르니, 뜻이 열린다. 無限開展. 만민공생이라는 정치이념과 홍익인간의 뜻과도 부합한, 하나부터 열까지의 숫자에서도 이러한 인과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